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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과 발효 === 2001년 12월 5일 벨포르 대통령궁에서 서명식이 열렸다. 대통령궁은 1.19 사건 당일 NA145편이 노렸던 곳이다. 캘러핸과 고랜드 민주공화국 대통령 무함마드 나지불라가 본문에 서명했고, 사비에트 최고인민평의회 주석 미하일 인터루쇼프가 부속 의정서에 서명했다. 비공개 합의의사록은 같은 날 오후 양국 외무장관이 별실에서 서명했다. 캘러핸은 서명식에서 "우리는 1.19의 희생자들에게 정의를 약속했지, 1980년대의 전쟁을 다시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지불라는 1992년 무자헤딘의 포위 속에서 아바나를 지켰던 일을 언급하며 "우리는 한 번도 이 싸움을 멈춘 적이 없다. 이제 세상이 우리 편에 섰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루이나 대통령과 사비에트 최고지도자가 같은 서명식 탁자에 앉은 사진은 이튿날 루이나와 사비에트의 거의 모든 신문 1면에 실렸다. 국내 반응은 엇갈렸다. 보수 진영의 《르 나시오날》은 "붉은 별과의 결혼"이라고 비난했고, 진보 진영의 《라 부아》는 NIA가 1990년대 탈레반을 간접 지원했던 과거부터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1980년대 무자헤딘 지원에 관여했던 전직 NIA 간부들은 공개서한을 내 "우리가 무기를 쥐여 준 사람들을 이제 우리가 쏘게 되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1.19 이후의 여론은 알자미아를 잡는 일이 먼저라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루이나 상원은 12월 18일 찬성 71표, 반대 26표로 비준에 동의했다. 반대표의 대부분은 반공 성향의 보수파 의원들에게서 나왔다. 고랜드 민주공화국 국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2월 12일, 사비에트 최고인민평의회 상임간부회는 12월 14일 각각 비준했다. 비준서는 12월 20일 교환되었고, 협정은 제17조에 따라 30일 뒤인 2002년 1월 19일, 1.19 사건 1주기에 발효되었다. 발효일은 비준서 교환일을 조정해 일부러 맞춘 것이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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